태권도축전과 태권도 공원
밖에서 존중하는 우리의 태권도
2003년 봄 서울올림픽공원 내의 88 수변무대에서 추도식이 거행된 바 있다. 미국태권도협회(ATA)의 초대회장이던 고(故) 송암 이행웅회장의 3주기 추도식이었다. 대중들이 그 이름을 알 리 없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고향이던 미국 아칸소주에서 매년 송암세계태권도대회가 열리고 그날만은 주 정부의 청사에 미국 성조기와 한국의 태권도기가 나란히 게양된다는 것을 알고 보면 뿌듯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30년이 더 되었다는 이 대회에는 미국은 물론 잉글랜드, 캐나다 등 15개국의 태권도 선수와 애호가가 참가한다고 알려졌다. 미국 리틀록에서 이 대회의 소식을 전한 한국 기자는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는 서양인들도 예의와 절도를 중시하는 태권도 앞에서 허리를 굽혀 깍듯한 예절을 보이고・・・ ‘준비, 차렷, 시작’ 이라는 구령을 또박또박 한국말로 하는 광경을 본 감격을 전했다. 이외에도 미국 국회의원들 사이에 태권도교습을 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온 이준구사범의 이야기도 비교적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이준구 사범의 해외 태권도 보급 활동은 이 사범이 해외 주둔 미군을 위한 위문단과 함께 한국에 와서 태권도시범을 벌인 사건이 기사화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구미와 중동에서 한국인 사범들이 태권도장을 운영하면서 세계에 우리의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다. 국기원에 따르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사범수는 약 200명에 달한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라 밖에서 태권도를 가르쳐왔고 이들과 국내 태권도인들의 노력의 결과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다.
태권도 전당에서 태권도 공원으로
태권도인 사이에는 태권도의 본당으로서 국기원이 있다. 승급 및 승단 심사가 이뤄지는 곳, 각종 태권도 종별 대회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거기에는 태권도협회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태권도가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데 비해서 국기원은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미흡하다는 인식이 크게 퍼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무술을 상징할 수 있는 성전이라 할 만한 역사성을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국기원을 대신할 태권도성전을 건립하자는 주장은 태권도계에서 먼저 나왔다.
태권도성전이란 용어의 발원을 좀더 따져 보아야겠지만 대한태권도협회에서 태권도성전의 건립 필요성이 발의되었다. 태권도성전을 건립하자는 의견은 한동안 반향을 얻지 못하고 표류했다. 1998년 정부는 태권도공원의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했던 태권도공원 조성계획은 태권도성전 건립의 필요성을 수용하되 단지 태권도수련관이나 태권도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관광객이 방문해서 체험관광을 하고 태권도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한국을 알고 가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명칭은 태권도성전 건립이 아닌 태권도공원 건립으로 바뀌었다. 즉 태권도공원의 건립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태권도 세계화를 좀더 체계적으로 진행시키자는 의지와 태권도라는 수단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함께 있었다.
당시 발표된 태권도공원 사업은 태권도전당, 태권도수련원, 영상단지,한방·기공단지, 관광단지, 청소년수련단지 등 6개 단지 100만평 규모의 3,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국책사업이었다. 태권도성전과 역사박물관, 연수원, 화랑훈련장, 태권도 쇼핑몰, 실내·외경기장, 호텔, 유스호스텔, 각종 레포츠시설, 상징탑 등 다양한 시설물이 고려되었기 때문에 태권도공원 사업의 투자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게 된 셈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태권도공원이 지역사회 경제에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추산하면서 유치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예를 들면 유치신청을 했던 한 군(郡)의 홍보 홈페이지를 보면 태권도공원이 유치될 경우 연간 200만 명 이상의 태권도 수련생을 비롯한 관광객의 방문이 기대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더구나 태권도공원 자체의 경제적 파급효과뿐만 아니라 태권도공원 인근 국립공원 지구의 관광단지 활성화, 심지어는 근거리에 있는 지방 공항의 경제적 재기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적 파급효과나 사업타당성은 보다 엄밀하고 신중하게 연구·분석되어 발표되어야 하므로 이러한 특정 군의 기대가 충복될 수 있을지 여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역경제에서 관광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지역일수록 체험관광의 요소를 갖는 태권도공원 사업에 큰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태권도수련을 받기 위해서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아직은 가늠키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의 과열 유치전의 전개로 태권도공원 사업이 잠정 유보되고 있지만 태권도공원 사업은 다시 거론될 것이다. 왜나하면 태권도가 세계시장을 바라볼 수 있는 스포츠임이 분명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개발을 위해서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태권도 마케팅
1999년 한국을 국빈으로 방문했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왕이 하회마을을 찾은 것은 국빈 방문 일정에 상대국의 전통 마을을 둘러보고 싶다는 여왕의 희망 때문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상식이 확인된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고유의 스포츠는 다른 종목과 달리 국제 관광자원으로서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운동종목이 향후에 개발될 수 있겠지만 현재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태권도와 민속씨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권도는 시드니올림픽에서부터 공식종목으로 채택되었던 점과 해외에 진출한 한국인 사범들의 활약으로 해외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스포츠관광 상품화의 가능성이 매우 큰 종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민속씨름의 경우는 스포츠종목이자 문화 자원으로서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한국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나가노 동계 올림픽을 치르면서 스모선수가 피켓 걸 대신 선수단 피켓을 들고 나와 세계적 이목을 끌어냈다. 또 최고 스모 선수로 하여금 개막식 행사 중 악령을 쫓아내고 경기장을 정화시키는 상징적 의식을 하게 함으로써 스모를 관광, 더 나아가 국가 이미지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내 태권도축전을 개최하고 태권도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은 태권도를 스포츠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스포츠산업화의 현 단계를 진단한 이유는 결국 스포츠의 관광자원화의 가능성이 한국 스포츠 재화의 특성과 긴밀히 연관되기 때문이다. 말을 바꾸면 스포츠의 관광자원화를 위해서 일차적으로 관광에 적합한 상태의 스포츠 제품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태권도는 그런 점에서 매우 잠재력이 큰 자원이라는 것이다.
태권도에는 이미 태권도인, 태권도장, 태권도학과나 체육학과에서 배출한 인적 자원과 시설 자원이 있다. 예를 들면 영남의 G대는 여름방학 동안 캠퍼스 내의 코리아태권도센터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태권도 체험 캠프’ 를 연 바 있다. 충북의 C대학은 매년 연례적으로 국제태권도축전을 여는데 이때는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협력하여 축전을 끌어나가고 있다. 해외에서 태권도정신을 체험하고 태권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이 대학은 대학생 태권도시범단을 해외에 순회시키면서 국제태권도축전을 홍보하고 대회 참가를 권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호반의 도시 C시도 태권도페스티벌을 추진한 바 있고 특정지방도시의 태권도마케팅이 지역발전 전략으로 제안되고 구상되는 등 지방 여기저기서 태권도마케팅 열기가 뜨겁다.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몇몇 이벤트가 생겨나고 있다. J시에서는 세계태권도 화랑문화축전을 열었고 30개국에서 1,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 대회는 지역의 스포츠이벤트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축전 기간에는 건강박람회, 거리공연, 전통무술시범, 몽골 전통씨름 시범이 있었고,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국제 문화경연대회, 전통문화체험, 지방대학의 무도연구소가 주관하는 학술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어 말 그대로 지역사회 전체가 이벤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역자치단체의 지역개발 전략으로서 태권도를 활용하려는 의지는 최근 들어 더 강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가 각 지방자치단체가 계획을 세워서 제출한 사업 중에서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된 사업을 선정하고 그 지역이 특화지구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 환경에 비추어보면 각 지방자치단체는 태권도공원 유치 이전에 태권도를 활용한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일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민족화합의 구심도시로서 상징성 선점
마라톤, 축구, 농구, 탁구 등 남북 선수가 모인다면 그 자리에서 함께 시합을 할 수 있지만 유독 그렇지 못한 종목이 태권도이다. 남한의 태권도와 북한의 태권도가 다른 형태로 발전해서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남한은 세계태권도연맹으로, 북한은 국제태권도연맹으로 전 세계에 태권도를 보급해왔지만 정작 이들은 다른 경기규칙과 운동기술 때문에 서로 벽을 느끼고 있다.
북한의 태권도를 이끌고 있던 인물 최홍희씨는 북한식 태권도 대회인 국제태권도연맹 세계대회를 남한의 제주도에서 열 것이라고 발표해서 관심을 끌었다. 국제태권도연맹의 회원국은 120여국이며 회원수가 4천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의 주장이었다.
이 발표 이후 제주도는 혹시 1만 명 이상의 관계자가 참가할 대회가 성사된다면 월드컵대회 못지않은 스포츠관광 수요가 창출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관심을 끌었던 것은 국제태권도연맹대회가 민족화합 가능성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매우 상징적인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제주도태권도협회장은 지방지와의 회견에서 ‘이 대회가 제주에서 열릴 경우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면서 ‘둘로 양분된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태권도연맹이 화합하는 자리로서 의미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감스럽게도 최홍희 총재의 사망으로 모든 계획의 실행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그러나 태권도마케팅을 한 도시는 경제적 효과, 국위선양의 효과에서 더 나아가 화해의 도시로서 상징적 이미지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 베를린을 방문할 때, 갈등을 극복하고 독일 통일을 이뤄낸 화합도시로서 베를린이 갖는 이미지를 보러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참조 : 제주도 스포츠관광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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