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운동과 도시기능의 출현
서양철학과 사상의 커다란 조류인 헬레니즘. 그리스의 신들은 모두가사람과 같은 인격과 성품을 가졌고 기쁘고, 슬프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헬레니즘이란 인간 중심주의, 즉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것으로 당시의 신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하고, 실수도 하며,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인간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기독교 문화가 자리잡게 된 이후로 중세의 1천년의 시기는 오직 절대적 신만이 존재하였다. 신앙의 이름으로 모인 십자군, 교황의 절대 권력, 파면권 때문에 유럽의 최고 권력자이며 지엄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였다가 이탈리아 카노사성 밖의 차가운 눈 위에서 무릎을 꿇고 파면을 거두어 달라고 3일동안 용서를 빌지 않았던가. 그러나 170여 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에서 저지른 약탈과 살육은 유럽인들 사이에 교회에 대한 반성을 일게 했고 인간의 참된 감정은 르네상스 운동과 함께 다시 꽃을 피우며 갇혀 있던 올림픽 운동도 근세 들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근세의 새로운 올림픽 운동도 인간 본위의 우수함을 내세우며 순수하게 시작했으나 인류는 다시 두 차례에 걸친 격동의 세계 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스포츠제전은 냉전의 흐름을 타고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 군대의 강력한 지원에 의해 웅장한 시설을 갖춘 대제전으로 치러졌다. 당시에 나치스의 당기(黨旗)를 처음으로 국기로 사용해 대회장 안팎에 휘날리게 하는 등 정치색이 짙은 대회였다. 이후부터 올림픽은 세계열강들의 또 다른 치열한 각축장이 된다. 메달의 수가 강대국의 상징처럼 인식되었고 각국은 메달 따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소련, 프랑스, 동독, 서독, 쿠바, 미국 등 2차대전의 치열한 다툼에 뛰어든 나라들은 물론 동서 냉전시대의 국가들은 모두가 이런 맥락에 있었다. 때문에 올림픽을 치르는 국가의 도시에서는 장엄한 경기장 시설의 건설을 통해 국가의 위용을 나타내는 데 가장 우선을 두었고 오늘날과 같은 사회경제적인 측면보다는 경기력 위주의 국가적 스포츠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1973년 세계경제는 커다란 폭풍에 휩싸이게 된다. 이른바 석유파동이다. 대량생산을 하던 세계 공업국들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위기가 새로운 대응을 불러일으키듯이 세계경제는 대량생산체제에서 저생산체제로 전환되고 사람들은 물량소비위주의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생활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개성과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위기와 혼돈의 시기를 거치면서 올림픽과 같은 대형 스포츠제전을 유치하는 나라들은 강력한 국가의 위용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 자기 나라의 도시 발전을 도모하고 시민들의 질적인 삶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사회경제 활력을 위한 촉매제로서 올림픽을 활용하게 된다.
올림픽 도시, 서울과 바르셀로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새로운 모습으로 환경 정비를 하였다. 서울은 대도시로 성장해오는 동안에 생활환경 및 사회간접자본 부문의 투자가 적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은 도시면모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강종합개발사업에 의한 한강변의 정비는 강물의 정화는 물론 시민에게 새로운 휴식과 위락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도시의 환경을 개선하였다. 이런 한강종합개발사업 외에 잠실야구장, 체육관, 올림픽 기념관 등 경기장시설의 확충을 통해, 소득수준의 향상과 여가시간의 증대로 인한 시민의 위락 체육시설 수요를 한층 더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 또 공공 위생시설의 정비 확충으로 더 낳은 양질의 서비스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의 면모가 일신한 것은 사실이나 올림픽 투자가 대부분 서울에 편중되어 서울과 지방간의 실질적인 성장격차는 물론 지방 주민의 상대적인 소외감을 야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1980년 이후 스페인은 지방분권화 운동으로 새로운 지역도시들이 출현한다. 그러나 바로셀로나는 자주독립 지역으로 지방분권화보다 중앙집권적인 카탈론 자치 국가 형태를 띄게 된다. 1992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바르셀로나는 지역경제와 도시계획의 재구성을 위한 전략을 세웠다. 유치 당시 바르셀로나는 생산구조상 아주 소규모의 회사가 군집되어 있었으며 1980년대 산업에 대한 적응에 허약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바르셀로나는 올림픽 유치를 통해서 외국기업의 유치와 국내 투자 자본의 유치 등 도시의 산업구조를 현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는 바르셀로나가 유럽의 메트로폴리스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고 지역경제를 재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올림픽 유치로 인한 지역경제의 활성화 목표가 철두철미하게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이벤트는 임시고용을 창출할 뿐 새로운 산업으로 재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등 지역경제의 반(反)구조화를 야기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으로 인한 고용창출은 임시직이 대부분이었고 다시 일자리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안정된 고용이란 주로 서비스분야가 그것도 주로 20~40대가 차지했다. 상류계층이 사는 도심의 실업률은 9.6%인 반면 노동자와 빈민이 사는 곳은 무려 19.9%에 달하고 있어 그들이 추구한 도시 재균형 감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택문제와 관련해서는 특정 지역의 새로운 정비로 연속적인 주택비의 상승을 가져와 서민들의 내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또한 도시 중심의 서비스 활동이 증가하면서 집세가 상승하여 공공주택이 아닌 민간주택의 경우 1987~1989사이에 무려 200%가 올랐다. 이 집세의 상승은 젊은이를 시외로 이동하게 했고 결혼 연령도 늦추게 했다. 올림픽의 유치에 이어 나타난 삶의 질의 개선은 특히 상류층이 누리고 있어 특정 계층만 집중적으로 혜택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서비스 분야의 발전은 빈부격차에 따른 소비 행태의 차별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동계올림픽의 도시,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과는 다른 효과를 갖고 있다. 도시계획에 있어서 무엇보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중점을 두는 특징을 갖고 있다. 요컨대 올림픽을 계기로 투자시기를 앞당겨 여건조성사 업을 시행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스포츠는 대부분 산에서 이루어지므로 도로, 철도, 항공시설의 건설이 요구된다. 알베르빌의 경우 산으로 몰려드는 수만의 운전자가 협곡에서 차단되어 수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따라서 새로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초고속 열차인 TGV의 선로를 개최지까지 연장하는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야 했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최지역이 많다. 10개의 지역에서 경기가 치러지고 3개의 지역에서 지원서비스, 통신, 프레스 센터, 선수촌을 맡았다. 이처럼 개최지역이 많았던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지리적, 외형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다. 2,000여명의 선수와 각국 초청인사, 기자, 수십만의 관람객 등을 감안하면 2~3개의 지역으로 대회를 치른다는 것은 무리였다.
두번째 이유는 따렁떼즈’ (알프스로 둘러싸인 대회가 치러지는 지방을 총칭하여 말함)라는 지역을 광범위하게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특정 지역만의 이익을 위하여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종목이 개최되는 10개 지역으로 구성된 따렁떼즈 지방을 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알리자는 의도였다. 이 지역은 농업이 아니라 실제로 관광수입에 재정을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역재정 확보를 100%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이 지역으로서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만약 5개 지역으로만 치렀으면 사회간접자본 개발의 감소와 지역간 균형 발전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었지만 이런 요인을 감안하여 따렁떼즈 지방 대부분의 지역에서 각종 경기를 치르게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겨울 스포츠 인구특히 스키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되고 있는 추세를 반복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같은 추세가 계속될 전망이어서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이 지역에 공장을 유치하고 농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유치도시의 결정 : 정치적인 결단
올림픽과 같은 메가 이벤트를 치르는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사업이 있다. 하나는 대회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직접투자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올림픽을 계기로 투자시기를 앞당겨 시행하는 간접투자인 여건조성사업이다. 이 여건조성사업은 도시의 기능을 한층 더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올림픽이 월드컵과는 달리 도시명을 따서 대회명을 붙이나 그 역시 국가적 이벤트임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올림픽을 처음 유치하는 나라는 마치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 대학이 교육부 등으로부터 대학 평가를 받는 것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신생 대학에서 평가를 받게 되면 그 동안의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교직원, 학생들을 위한 각종 시설 등이 일시에 발달하는 경우도 있다. 평가를 받고 난 후 결과가 최우수 정도 나오면 그 대학은 자부심과 긍지도 생기고 지명도도 높아져 대학 전체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메인스타디움인 셍드니의 경기장은 바르셀로나와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파리의 교외에 위치한 가난한 지방자치단체인 셍드니 시를 1998년 월드컵 메인 스타디움 소재지로 결정한 정부의 선택에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국토 정비라는 차원에서 정치적인 결단이 크게 작용하였다. 월드컵 개최지 결정전에서 이 도시는 매우 활력이 없는 도시로 분류되었다. 단순한 공업지역으로서 6만 명의 산업근로자 및 서비스 종사자, 국립미술장식학교, TGV정비장소, TF1의 스튜디오, 연구센타 등이 이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시에서는 초기에 이곳에 국립도서관을 유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메인 스타디움의 설치로 도시의 긴장감과 활력감이 생기게 되었다. 월드컵 주경기장의 건설에 맞춰 정부는 투자시기를 앞당겨 셍드니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착공하고 재정보조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속도로의 건설로 셍드니 교통망이 확대되었고, 친환경적인 시내 궤도 열차의 건설과 시외전철의 건설로 도시발전을 앞당겨 도시 전반에 활력이 넘쳐나기 시작하였다. 셍드니 시를 월드컵 메인 경기장 소재지로 선정한 후 나타난 결과이다.
이처럼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이벤트를 유치하게 되면 대회 직접수입 이외에 다른 간접적인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제적 효과이다. 대회 유치로 인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공공지출이 지역의 다른 프로젝트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지역 개발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민의 자긍심과도 연결될 수 있는 상징적인 효과이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의 머리 속에 쌓이는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그것이다. 이는 지역의 문화수준 향상과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세 번째는 사회·정치적인 효과이다. 즉 개최도시에 생기는 새로운 역량이다. 대회는 지방자치단체 또는 개최도시에 대한 순수한 책임감,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며 지속적인 개발의 비전을 갖게 해준다.
따라서 국가가 유치 도시를 선정할 때나 유치 도시에 대한 지원 등을 판단할 때는 해당 도시에서 이런 보이지 않는 신성한 결과를 확신할 수 있을 때 신념에 찬 결정을 할 수 있다.